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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꽃향기속으로,

충북 보은 선병국가옥를 보고 오다



어제는 보은엘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민속가옥인 선병국가욱을 둘러 보았습니다.


선병국가옥은 민속자료에 등제 되어 있으며
넓은 대지에 기와집으로 옛 조상들의 발자취를 느끼게 해주더군요..



시냇물이 모이는 넓은 삼각주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집이다.

자연경관과 집이 어울려 대단히 아름다운 환경을 이루는데, 건축 당시에 훌륭한 목수들을 가려뽑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사랑채·안채·사당채를 둘러싸고 있는 안담의 바깥으로 널찍하게 외담을 두껍고 높게 둘러쌓았는데,
1980년 대홍수 때 피해를 입어 많이 허물어졌다.  (문화재청에서 발취)



이곳 선병국가욱을 방문하니 많은 학생들이 고택을 구경하러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이곳 고택을 둘러보니 정말 넓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나왔답니다.

이곳 첫대문인 솟을대문입니다.
옛날 양반집 큰 대문으로 이 문으로 들어서면 몇개의 작은 문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선병국가옥의 사랑채입니다.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134호
명 칭 보은선병국가옥(報恩宣炳國家屋)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1.14
소 재 지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4
시 대 일제강점기
소유자(소유단체) 선민혁
관리자(관리단체) 선민혁

'H'자 평면의 사랑채는 남향하여 자리잡았는데 보통의 사랑채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이다.

앞·뒤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여 더욱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하였다.
가운데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 옆에 큰사랑방을 비롯한 골방·약방·마루 등을 시설하였다.
역시 'H'자 평면의 안채는 사랑채의 왼쪽에 자리하였는데 가운데의 대청이 중심이 된다.
대청은 앞·뒤 툇마루를 통하여 어떤 방으로도 갈 수 있다.
부엌은 아주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위에는 다락이 마련되었다.
대체로 사랑채와 비슷한 구조를 하였으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원기둥을 사용한 반면 안채는 앞쪽만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문화재청에서 발취)


 


이곳은 안채로 가는 골목으로 지금 사람들이 거주를 하고 있어
이곳 촬영은 자제를 하였답니다.
안채도 사랑채와 같은 구조라합니다.


안채를 넓게 둘러싸서 안마당 공간을 만들고 있는 'U'자형의 행랑채는 대문간·문간방·구들·광으로 만들었다.
사당채는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 해서 배치되었다.
남쪽에 부엌을 두고 있는 제수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복도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난 시설물로
비바람이 칠 때도 의례를 거행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1919∼1921년 사이에 지은 이 집은 개화의 물결을 타고 개량식 한옥구조를 시험하던 때에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한 것이어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문화재청에서)




저기보이는 중앙의 기와는 안채와 함께한 곳간이랍니다.
어찌나 넓고 큰지..
그곳 안쪽 기와들이 안채랍니다. 지금 주치가 되어있죠..
거주중이랍니다.



이곳은 사당입니다.




선병국가의 효열각, 효열문~

선병국가의 장독대입니다.
장독대를 보면 그집 장맛을 안다고 하죠..
집 울타리안의 장독대입니다.



이곳은 울타리 밖의 장독대입니다.
이곳 장독대는 지역마다 다른 각종 장독대를 모아놓고 설명서도 붙여 놓았네요




(평안도는 추운지방이므로 남쪽에 비해 키가작고
입구가 크며 몸통은 옆으로 퍼진 특징을 보인다)  

이렇게 문구가 적혀 있답니다.
지방마다 다른 독의 형태를 한눈에 불 수 있게 모아 두었더군요..

(충청도 독은 전라도 독과 비슷하지만
전라도 독처럼 각지심하지 않고 키가 가늘며 입구역시 좁은편에 속한다.)



선병국가옥 주변의 소나무밭과 울타리의 담쟁이도 멋스럽습니다.